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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입시제도 폐지

열정체험단_ 2008. 10. 23. 13:42

 

1968년 7월 15일 문교부는 중학입시제도를 폐지하고 무시험 추첨제 실시한다는 새로운 중학교 입시제도를 발표했다. 이 발표에 따라 문교부는 8월 2일 국무회의에 구체적 정책방안을 보고안건으로 제출했다.

이 보고서에서 문교부는 중학입시제도의 문제점으로 학부형의 경제적 부담 가중, 교육불신 사조의 대두·인간교육의 결여·사도(師道) 타락 등 교육의 비정상화 등을 제시하면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중학교 무시험진학제도 시행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무시험진학은 행정구역과 학교를 고려해서 학교군을 선정하고 학교군 내에 있는 중학교 입학 지원자를 추첨하여 중학교에 입학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고하였다.
중학교 무시험 추첨제는 1969년도에 서울에서 시범적으로 실시되었고, 1970년도에는 부산·대구·인천·광주·대전·전주에서, 1971년도에는 전국으로 확대 실시되었다. 시험 대신 은행알을 넣은 수동식 추첨기를 뺑뺑 돌려 학교를 배정받았기 때문에 후에 이들을 ‘뺑뺑이 세대’라고 지칭했다.
1960년대 들어 전쟁 베이비붐 세대의 초등학교 진학과 초등교육 의무화로 학생수가 크게 증가했다. 인적 자원에 바탕을 둔 공업화와 학력에 의해 사회지위가 정해지는 현실이 맞물리면서 일류 중학교를 가기 위해 초등학생들이 과외를 받고, 대도시로 위장 전입·입학하는 등 과열양상을 보이게 되었다.
입시경쟁 과열화는 1964년 ‘무즙파동’과 1968년 ‘창칼파동’ 등의 사건으로 비화되었다. ‘무즙파동’은 1964년 12월 서울시내 전기 중학입시에서 출제된 ‘엿을 만드는 과정에 들어가는 효소’ 문제를 놓고 일어난 사건으로, 학부형들이 정답인 디아스타제 이외에 무즙도 정답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 문제를 법원에 제소, 승소한 사건이다. 무즙을 정답으로 썼던 학생 38명이 경기중학교 등에 입학하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되었으나 이 과정에서 일부 학부형들은 무즙으로 엿을 만들어 솥 채로 들고 나와 시위를 벌이기까지 했다. 1968년 ‘창칼파동’ 역시 경기중학교 입시에서 낙방한 수험생 학부모들이 시정을 요구하며 법원에 제소한 사건으로, ‘창칼을 바르게 쓰고 있는 그림’ 문제에 대한 정답을 두 개로 채점한데서 비롯되었다.
‘무즙파동’, ‘창칼파동’ 등으로 인해 초등학교 교육의 정상화와 입시제도 개선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고 결국 중학입학시험 폐지가 전격 시행되었다. 이후 과외열기는 줄어들고 가정의 경제적 부담도 감소했으며 학교 간 격차 해소와 학교 내의 입시준비 교육개선 효과가 나타났다. 그러나 곧 중학교 입시경쟁이 고등학교 입시경쟁으로 바뀌었으며, 결국 1974년 고교평준화 정책의 실시로 이어졌다. (공개서비스과)